꿈을 심은 사람들 – Factive story 2

2011년 2월 21일에 페이스북에 쓴 글인데… 2012년 12월 레고켐은 AZ에 기술이전을 하고, 2013년에는 상장을 했다..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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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옛날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던 대한 니유~~~스 한컷(1991년 2월11일) 부터 시작합니다.

(http://film.ktv.go.kr/koreanews/korea_news.jsp?page=25&yearCheck=&searchCategory=&searchText=&selOption=&searchText2=&pageSize=5&subjectID=151000&spanid=&codelist=&orderBy=orderByDate&orderAsc=ASC&orderbyd=&input_sdate=&input_edate=)

내용요약하면 이렇습니다. LG화학 정밀화학연구소의 김용구(?) 박사는 세계최초로 4세대 세파계 항생제를 합성해서 세계적 기업은 글락소에 수백만불의 기술료를 받고 기술이전했습니다. 그리고 김용구(?) 박사의 씩씩한 인터뷰~~~

(김용주 박사님인데 아마 제작 과정에서 이름이 잘 못 들어간 것 같습니다.)

 

김용주 박사님 (현 레고켐 대표이사)김용주 박사님 (현 레고켐 대표이사)

영상에 나오는 머리 까맞고 통통한 김용구(?) 박사님이 지금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벌써20년 전이기에 머리가 희어지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이분의 40대초반부터 머리가 희어졌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나은것 같기도 합니다. (김용주 박사님께서 저와 계속 교류를 하고 친근하게 지내기 때문에 좀 편안하게 글을 쓰고 있음)

이분을 처음 뵌 것은 1991년 초봄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있었던 한 세미나에서 였습니다. 연사였냐구요? 아니요. 연사분은 지금 화학연구원 원장으로 계신 오헌승 박사님이시고, 김용주 박사님은 그분의 가방모찌로 와서 세미나 전에 슬라이드 (지금의 빔프로젝터의 전신… 슬라이드 필름을 만들어서 한장씩 기계에 넣어서 진짜로 돌리던 시절의 것)를 한장씩 프로젝터에 넣던 분이었습니다.

오헌승 박사님 (현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오헌승 박사님 (전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오헌승 전무님(당시 호칭)이 세미나가 바로 “4세대 세파계 항생제”였습니다. 세미나 도중 오헌승 전무님은 “이 일은 저기 슬라이드로 수고하는 김군(?!?)이 한겁니다.”… 박수 짝짝…. 이렇게 저는 김용주 박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사실 91년 그 당시 “4세대 세파계 항생제”는 제가 기억하기로 조선일보 사설에도 “이것이 살길이다” 정도의 제목으로 (제 기억에만 의존한 것임) 언급될 정도로 한국 최초의 기술수출 (제약업계 뿐 아니고, 아마 한국 모든 분야에서 최초의 기술수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대한 니우~~스”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LG화학 (LG생명과학의 전신)에 입사한 것이 93년 봄이었으니까 그 때 분위기는 모든 사람들이 흥분돼 보이고, 한국 그 어디에서도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느끼지 못하던 흥분과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또 팽팽한 긴장도 있었구요.

물론 저는 바이오 쪽이었기 때문에 김용주 박사님 팀과 직접적으로 일하지는 않았지만, 제 친구들과 선배들이 거의 대부분 정밀화학연구소( 현재 LG생명과학연구원 신약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위의 그림 중에 있는 김영관 박사님은 바로 얼마 있다가 홍창용 박사님과 팀을 이루어서 퀴놀론계 항생제를 직접 합성에 성공했던 분이기도 하지요.

좀더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최남석박사님 최남석박사님

G생명과학의 바이오/신약연구는 1980년대 초로 올라갑니다. 당시 LG화학의 CTO 이셨던 최남석 박사님께서 당시 미국에 계시던 조중명 박사님 주축이 되어 Lucky Biotech Corporation (LBC)라는 연구소를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 에머리빌에 차리면서 부터였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당시 합성하시던 분들이 신약은 언감생심… 제네릭이나 다른 연구를 하셨다고 합니다.

조중명 박사님 (현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이사)조중명 박사님 (현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이사)

LCB는 당시 최첨단의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한건물에 같이있던 Chiron에서 배우면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일들을 했습니다. 지금 LG생명과학이 판매하고 있는 인간성장호르몬 등이 LBC에서 유전자재조합되었습니다.

저는 말씀드린 것처럼 93년도에 입사해서 그 전의 이야기는 어른들과 선배들에게 들어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남석 박사님의 원대한 꿈은 1994년 현재의 LG화학연구원으로 그 모습이 들어났습니다. 당초는 현재 ETRI앞에 있는 작은 규모의 연구소에서 있었지만 세파계 항생제 등에 힝입어 그 당시로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연구소를 지었던 것입니다. 제가 입사할 때는 그 규모를 보고 정말 입이 쩍 벌어졌었습니다.

94년 당시 LG를 소개할 때는 박사/석사연구원비율을 꼭 강조해야 합니다. 왜냐면 매년 회장보고때 꼭 들어갔었거든요. 1:4 즉 석사연구원 4명에 박사연구원 1명.  전체 연구원수 신약/바이오분야만 230여명.. 그러니까 박사인원만 50여명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최남석 박사님의 꿈의 실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박사님들과 복도에서 만나면 “What’s up” 또는 “What’s new”라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김용주 박사님께 들려주신 비사 한건….

최남석 박사님께서 쿠사리(?)먹으며 품의받았던 magnetic stirrer최남석 박사님께서 쿠사리(?)먹으며 품의받았던 magnetic stirrer

연구소 초기…. 마그네틱 스터러 (magnetic stirrer)가 첨단 시험기기였던 시절… 김용주 박사님이 최박사님께 마그네틱 스터러 20여개를 사야겠다고 햇다나요…. 그리고 품의서를 써서 드렸고, 최남석 고문님은 품의를 받기 위해 당시 럭키화학 사장님 (제가 이분 이름은 모름)을 서울가서 뵈었다고 합니다. 거의 1시간 정도를 비싸다느니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느니 등의 꾸지람을 하시고는 “꼭 필요해?” 라고 물어서 최남석 박사님은 “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날 내려오셔서 김용주 박사님과 술드셨답니다.

김용주 박사님은 제게 최남석 박사님께서 본사에 가서 연구에 필요한 resource를 얻어오기 위해서 참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는 의미로 이야기 해셨지요.

여하튼….

1993-4년 퀴놀론계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뜨기 전에 LG 당시 분위기는 선구자들의 기상 (spirit 혹은 upbeat drum 소리)로 가득찼었고, 저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며 첫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성천박사님 (현 LG생명과학 CTO)김성천박사님 (전 LG생명과학 CTO)

실제 제가 첫 수행했던 프로젝트도 당시 최첨단이었던 AIDS 치료제와 항응혈제 등이었습니다. 제가 관여되었던 (사실 연구초짜였기 때문에 선배들 틈에 끼여서 일했던) AIDS 치료제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도 아직 AIDS치료제가 없던 시기, 우리 LG는 세계의 Merck, Abbott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했었으니까요….. 1995년 LG의 AIDS치료제 논문이 Nature에 게재되었을 때는 정말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아마 Nature는 국내최초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주 연구자였던 김성천 박사님 (현 LG생명과학 CTO), 그리고협력자였던 김상수 박사님 (제 보스, 현재 숭실대 교수) 그리고 그룹리더셨던 고종성 박사님 (현 Geenosco CTO, 미국) 등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제가 세계적인 무언가의 한 부분이라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덕분에 저도 Nature 논문에 살짝 이름 올라갔었습니다.

여하튼, 당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홍창용 -남두현 박사님이 함께 했던 퀴놀론계 항생제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참 행복한 첫 직장생황을 했다고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아직도 그립고 아련합니다.

누가 제게 “너는 누구냐?” 라고 묻는 다면 당시 LG의 분위기를 맛 본 저는 “제 이름은 꿈꾸는 자이고 저의 앞서 가시며 저를 꿈꾸게 하는 분들의 아들이요, 손자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아마 당시 LG에서 신약/바이오 분야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었을 겁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꿈돌이 “퀴놀론계 항생제 LB20304a (당시 Factive의 코드명)”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P.S. 이 글을 빌어, 당시의 그 LG의 열정을 만드신 최남석 고문님과 많은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당시의 그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달려가고 싶다고..” 그리고 나는 과연  제 후배들에게 이런 “열정”과 “꿈”을 심어주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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