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기사는 여기를
“미스터 션샤인”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혁신신약하는 사람으로서 가슴 저리게 와 닿은 대사가 있었다.
“무익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함”
극중 인물이 그 거친 세파 속에서 꽃을 사랑하고 달빛을 사랑하던 스스로를 묘사하며 종종 하던 대사였다.
신약개발이라는 실용적인 과학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서 웬 낭만이냐고 묻는다면, 수 많은 사람들의 “무익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의 결과가 혁신 신약의 토대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이번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였던 제임스 앨리슨과 타수쿠 혼조 교수의 업적은 첫 논문이 출간된 1994년으로부터 2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암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연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로 칭송을 받지만, 처음에 세상에 드러날 때는 많은 이들에게는 “무익한 (학술적으로만)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어디 이 뿐이랴?
현재 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혁명적인 기술로 칭송 받고 있는 유전자편집기술인 CRISPR도 초창기에는 그저 “무익한-혹은 실용성이라고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지식적으로만) 아름다운 것”들에서 출발하였다.
필자의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궤양성대장염 치료제 가능성이 있어 미국 임상1상을 마친 BBT-401이라는 약물도 사실은 “논문 출간”이상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무익한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하였다. 이 약물의 표적단백질인 펠리노-1이라는 단백질이 지금은 퍽이나 주목받는 단백질이 되었지만 2006년 성균관대학교 박석희 교수팀에서 논문을 낼 때만 해도 도무지 뭐에 응용될지 알 수 없는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익한) 과학적으로 아름다운 발견일 뿐이었다. 그러던 “무익함”이 자라고 자라서, 쌓이고 쌓여서 미국에서 임상 1상까지 마치 궤양성대장염 후보물질까지 된 것이다.
추후에 “유익함”으로 바뀔 수 있는 “무익한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부족하나마 몇가지 추천해 본다.
첫째, 현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자. 현재 알고 있는 지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것만큼 사실 “위험한 것”은 없다. 겸손의 미덕을 다시 보자. 특히나 의학이나 생물학 분야는 아직도 전혀 예상 못했던 발견과 발명들이 꾸준히 나오면서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경우들이 지금도 있다.
둘째, “대책 없는” 상상을 즐겨보자. “Why”보다는 “Why Not”의 자세로. 상상은 정답이 없기에. 사실 모든 과학은 “가설”에서 시작한다. 가설들의 초기에는 “증거”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설” 단계에서 증거가 없으니 그 “가설”은 틀렸다고 하면 그 가설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상상을 허락하자.
셋째, 상상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부담 없는 잡담의 기회를 만들자. “프로젝트 제안”, “연구계획서” 형태의 정형화된 의사소통도 필요하지만, 그 만큼이나 직위를 떠나서 편안하게 “상상들”을 “비판 받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나눌 수 있는 잡담의 기회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무익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해보자.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다.
